[e대한경제=박경남 기자] 제2, 제3의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를 막기 위한 정부의 ‘부실시공 근절방안’이 허점 투성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시공사·감리자에 많은 의무를 지우면서 발주자·인허가기관의 책임을 쏙 빼 균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다, 적정공사비·공사기간 등 안전·품질 확보를 위한 핵심방안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건설장비 임대차 계약에 대한 표준계약서 의무화, 국토교통부 직권 처분 등은 추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고, 레미콘 공장 시스템 인증제 등은 실효성에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4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부실시공 근절방안 관련 시사점’에 따르면 국토부의 부실시공 근절방안은 △안전 및 품질 책임 강화 △감리제도 개선 △엄격한 사후 대응 등을 기본방향으로, 총 19개 과제를 담고 있다.

우선 건산연은 이번 방안이 발주자와 인·허가기관의 책무 부여와 이를 위반했을 때 규제에 대해선 여전히 소극적이라며 합리적인 규율로 보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시공사와 감리자에게는 추가적으로 많은 업무를 요구한 반면 발주자·인허가기관은 상대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운 탓에 균형감을 잃은 방안이라는 것이다.

특히, 건산연은 이번 방안으로 인해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고, 추가 전문인력 투입이 필요한데, 건설현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품질관리자 배치기준만 보더라도 기존 등급별 배치기준 외에 업무 수행 경력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 우수 인력 확보에 대한 수급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번 방안에 담긴 일부 과제들은 향후 논란의 불씨로 작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건설장비 임대차 계약 때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국토부의 직권 처분 등이 대표적이다.

국토부는 이번 방안에서 건설장비 임대차 계약 때 표준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했는데,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공사와 건설기계 업체 간 계약은 사인 간 계약으로 표준계약서의 작성 및 사용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권장이 적합하고,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현장에 대한 점검을 활성화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건산연은 강조했다.

또한 국토부는 안전사고를 일으킨 건설업체에 대해 직권 처분하기로 했는데, 처분 시간을 단축할 순 있지만, 등록말소나 영업정지 등 처분이 과중한 만큼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원의 유·무죄 판결 전 처분은 크고 작은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실시공을 차단하기 위한 핵심 방안인 적정공사비와 적정공기 확보는 국토부와 고용부 간 줄다리기로 인해 산으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건산연은 국토부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통해 적정공사비와 공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고용노동부는 건안법 제정 대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적정공사비와 적정 공기 확보에 대한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레미콘 품질 관리를 위한 레미콘 공장 시스템 인증제 등에 대해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레미콘은 공급 반경이 지역적으로 한정되며 일정 거리 이상은 출하가 불가능한 지역형 사업인 데다, 주문생산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레미콘 공장 시스템 인증제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우려했다.

김화랑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이번 방안은 향후 제도별 별도 논의를 통해 다듬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현 시점에서는 실효성 확보를 위한 보완·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경남기자 k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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