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대재해 “방지법”이 아니고 “처벌법”인가? 중대재해의 방지가 목적인가 처벌이 목적인가?“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그 목적을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해설자료에도 “안전 및 보건조치를 강화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이처럼 중대재해 예방을 통해 시민과 종사자를 보호하겠다는 법률이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우려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졸속으로 급조된 법률이요, 현실을 도외시한 법률이기 때문이다.안타까운 산업재해나 중대사고로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중대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면밀한 원인분석을 통해 근본적인 해소대책을 강구해 나가야만 그 효과가 발휘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정부는 그동안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 시행해 왔다. 1981년에 제정되어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본문만 175조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의무와 함께 산업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여러 제도들과 업무유형별 특성까지를 반영한 내용들을 상세히 담고 있다. 또한 제정 이후 수십 차례의 법률개정을 통해 제도를 보완하고 개선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면서 실효성을 높이고자 힘써 왔다.재해발생에 대해서도 벌칙규정을 상세히 두고 있어 책임에 상응하는 징벌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벌칙 등을 강화한 개정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법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것이다.이처럼 급조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첫째 이 법은 원인의 해소가 아닌 결과에 대한 처벌에 방점이 두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병폐 중의 하나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냉정하게 그 원인을 분석하여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하기보다 결과만을 타박하고 비난하다가 정작 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마는 경우를 숱하게 목도해 왔는데 이 법 또한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중대사고일수록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고, 그 해법을 찾는 일도 그만큼 다각적인 분석과 다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여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음에도 그러한 원인분석과 해소대책은 간과한 채 과중한 처벌만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규정만을 강하게 담고 있을 뿐이어서 실효성을 낮추고 있다. 가장 많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건설산업의 경우 근로자의 과실로 인한 재해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근로자의 준수의무 규정이 없어 사고방지에 크게 미흡하며, 여러 공종의 근로자들이 함께 일하며 복잡한 원·하청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설산업의 특성상 재해방지에 노력을 다하고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둘째는 입법만능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이 강하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려면 그에 수반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효과는 극대화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의당 뒤따랐어야 함에도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고려 없이 법이 급조되었다. 특히 처벌내용의 엄중함과 그로 인해 미쳐질 경제사회적 영향의 심대함에 비해 정작 법안의 내용은 본문 11조, 보칙 5조 등 총 16조로 아주 간단하게 되어 있으며, 그 내용도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법이 갖추어야 할 명확성과 책임주의 원칙 및 예측가능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 중 중대재해에 대해 별도의 처벌법을 두고 있는 유일한 사례로 이 법이 모델로 삼고 있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는 데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법이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진정으로 중대재해를 방지하고자 한다면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기 이전에 중대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하게 되는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업무를 개선하며, 필요한 비용이 반영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업의 현실에 대한, 업무의 현장에 대한 냉정한 이해 없이 명분만을 앞세우고 있는 이 법은 임대차 3법처럼 효과는 미흡하고 부작용만 큰 또 하나의 실패사례가 될 것이다.법만 뚝딱 만들어 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무지와 무능을 호도하는 입법폭력일 뿐이다. 처벌법이 아닌 방지법이 되도록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형주 (사)건설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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