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시공 vs 英 시공 전단계’ 엇갈린 사고예방 무게추
韓 건설근로자 10만명당 사망자, 英의 29배 달해
구조전문가 아닌 막내 건축사보가 구조도면 그려

[e대한경제=김태형 기자]  #1. 지난 1월11일 광주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PIT층(설비ㆍ배관층) 바닥이 내려앉으면서 39층부터 23층까지 16개층의 외벽이 파손ㆍ붕괴돼 근로자 6명이 죽고 1명이 다쳤다. 건설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고에 대해 조사위원회는 구조 검토없이 시공방법을 무단변경하고, 동바리(지지대)를 조기 철거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재발방지책으로 부실시공 원ㆍ투 스트라이크 아웃제 및 손해배상책임 확대, 감리 공사중지권 및 전문교육 강화 등 시공단계에 화력을 집중했다.

#2. 영국은 건설현장의 중대사고를 줄이기 위해 1994년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법령인 ‘CDM(건설ㆍ설계ㆍ관리 규정) 제도’를 도입했다. 건설사고의 절반 이상이 사업 준비단계의 ‘부적절한 결정’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시공 이전(계획ㆍ설계) 단계부터 주요 참여자들의 안전관리 역할과 책임 분담을 규정한 것이다. 특히, 2015년까지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시공 이전단계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를 주설계자로 지정하고, 주설계-시공자 간 협업 역할을 추가하는 등 건설안전의 틀을 시공자 중심에서 계획ㆍ설계단계로 앞당겼다.

한국과 영국의 건설사고 예방대책의 무게추는 시공 단계냐, 시공 이전 단계냐로 극명하게 갈린다. 이처럼 엇갈린 정책은 양국 건설 사망사고의 격차로 이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건설업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417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50.4%)을 차지한다. 연평균 30명대 수준인 영국보다 10배 이상 많다. 건설업 노동자 10만명당 사고 사망자(2017년) 수를 봐도 한국(25.45)이 영국(0.88)보다 29배나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다.

우리 정부의 건설 안전대책이 30여년간 시공단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 건설현장의 언어이자, 시공자들의 바이블(성서)인 ‘도면’이 건축현장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야박한 설계 대가와 기형적인 제도 속에서 부실한 설계도면이 양산되고 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은 여전히 시공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다.

서울의 한 대형 건축감리회사 임원은 “설계도면 수준이 해마다 나빠지고 있고, 그중에서도 구조도면은 시공현장에서 쓰기 어려울 정도로 함량 미달 설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안전과 직결된 건물 뼈대를 짜는 구조도면을 구조전문가들이 그리지 않는 업계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구조도면은 구조기술사들이 구조계산서를 설계사무소에 넘기면 막내인 신입 건축사보가 최종적으로 그리는 ‘허드렛일’로 전락한지 오래다.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장은 “최근 철거 중 발생한 서울 잠원동과 광주 학동 건물 붕괴사고,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의 공통점은 구조안전의 최고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건축사를 중심으로 구조, 토목, 전기, 정보통신, 설비, 소방, 조경 등 관계분야 전문가들이 ‘원팀’으로 양질의 설계도면을 생산하려면 설계대가 현실화와 함께 플레이어들의 역할ㆍ책임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건축공사의 품질ㆍ안전을 이유로 분야별로 분리발주가 확산되면서 건축사의 총괄조정(코디네이션) 업무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설계를 총괄하는 건축사의 종합조정 업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인정해주고, 선진국보다 20∼30% 낮은 설계비도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초고층 건축물, 특수구조 건축물처럼 고난이도 프로젝트는 구조전문가에게 구조도면 작성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광량 CNP동양 대표는 “부실공사의 근본원인은 결국 부실도면 때문”이라며, “모든 건물은 아니더라도 초고층, 특수구조에 대해선 건축구조기술사들에 도면작성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해마다 목표로 내건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가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시공자 중심의 건설안전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도 힘이 실리고 있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축현장을 모르는 설계자, 안전보건관리에 무심한 발주자, 시공단계만 바라보는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부실 설계는 반복되고, 건설사고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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